일생에 한 번

안드레아스 벡커(정형외과용 교정화 제작 마이스터, 발 보조기 제품 책임자)

일생에 한 번,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전 세계의 모든 운동선수의 꿈입니다. 저는 어떤 종목에서도 조금의 재능도 없었습니다. 근데 제 네덜란드 동료인 쾬은 훌륭한 재능이 있었고 아마도 올림픽 챔피언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19살에 그는 선수로서의 경력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Bauerfeind팀에서 스페인 동료 루이스와 함께 우리는 강릉 올림픽 선수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정말 멋진 일입니다. 쾬은 거의 모든 네덜란드 스피드 스케이팅 코치와 많은 선수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심지어 혼자서 십대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우리 삼총사의 조지 클루니인 루이스는 전화번호를 따는 데 있어 선수일 정도로 정말 잘 생겼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멋지게 보완하므로 진정한 국제적인 드림팀입니다!

컬링과 배지

우리는 매우 즐겁게 일하고 있으며 우리가 겪은 사례를 토론합니다. 우리는 함께 지금까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가져다 줍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많은 컬링 선수를 돌봐야 합니다. 텔레비전에서 컬링 경기를 시청하는 사람은 본인은 "얼음판 위의 체스"에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앞에서 한 선수가 런지 자세로 걷고 무릎이 어떻게 극단적으로 구부러지고 바깥쪽으로 돌아가는지 보게 되면 압박 문제에 대해 아주 분명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 경우엔 여기서 신기한 것은 배지와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말입니다. 첫 배지가 생겼을 때, 저는 이미 물물 교환의 한 가운데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게다가, 쾬과 루이스는 항상 저를 위해 하나를 더 가져오고 저도 그들을 위해서 그렇게 가져옵니다. 우즈베키스탄 배지는 여기 선수촌에 단 하나만 있습니다. 저는 그 배지를 강릉 선수촌에서 지내는 우즈베키스탄의 유일한 출전 선수에게서 얻었습니다. 저는 그 배지의 교환 대가로 이른바, 각기 다른 네 종류의 희소가치가 있는 배지 거래를 제안받았습니다.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강릉 선수촌의 서비스센터에서 함께 근무한 쾬(왼쪽)과 안드레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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